2011년 4월 18일 월요일

또다른 교실이데아를 꿈꾸며

외국 팝송을 곁들여 교육개혁을 얘기하다보니,

'한국 노래는 없냐' 라는 친구의 요청이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올려본다.

노래마다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켰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돼서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그룹이 다시 출현하지 못하는 현 풍토가 더 안타깝다.

풍어빵 찍어내듯 비슷한 복장의, 비슷한 안무와 노래들로 무장된 아이돌 그룹을 보다보면

참 우리사회가 다양성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라고 외치는 노랫말은 학생과 어른들 모두에게 외치는 함성과도 같다.

정치개혁 또한 정치인들을 욕해대서만 될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참여해야만 바꿀 수 있다.
사회개혁들도 마찬가지고...
남이 바꾸기만을 원해가지고는 변화는 오지 않는다.


2004년 학내 종교 자유를 보장해달라며 1인 시위를 벌이다 퇴학을 당한 강의석군의 경우 그 당시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이후 그 친구의 여러형태의 사회에 대한 메시지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당시 그러한 저항은 침묵과 순응을 강조하는 엄숙한 사회에 한방 날린 사건이었다.



교실 이데아
                                           - 노래 서태지와 아이들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족해 족해 족해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썩 우릴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타로 넘겨 겉보기좋은 날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 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채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 걸

좀 더 솔직해 봐 넌 알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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