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대중 前대통령님의 업적과 공과를 내 나름의 평가로 정리를 해봐야겠다.
한 시대를 같이한 일정부분에 대해서 이제 말해야 할 것 같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이나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1997년,
구조조정에 내몰린 사회를 원망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밀지도 못했던 'IMF 저주세대'라 불리던 친구들이 이제는 경력 10여년이 넘는 사회인으로 성장한 지금,
IMF의 굴욕과 함께 탄생한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 요즘 세대들은 낯설어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몸소 체험해야 했던 세대들이 이제는 자랑이나 영웅담의 형식이 아니라 차분하게 역사를 들려줘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그때 왜 그래야만 했는지...
벌써 ‘민주주의’를 꺼내면 ‘아버지 어릴 적에는~말야’로 들리는 세대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댓글에 ‘빨갱이’, ‘슨상님’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후배들이 제대로 알고, 제대로 비판을 할 수 있도록 역사의 경험을 가감 없이 들려줘야 할 의무가 생겨난다.
내가 생각하는 DJ의 가장 큰 업적은 ‘호남의 한풀이’다.
대학은사 중 호남출신으로 보수의 중심에 계신 분이 있었다.
북한학을 전공하셨는데 정보기관과 친밀하게 지내셨다.
진보진영이라면 마뜩찮아 하시던 분이 어느 날 고백하시듯이 말씀하신다.
대학시절 하숙집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1950~60년대 대학가 하숙집에서는 전라도 출신을 가려 받았단다...
보수의 중심에 계신분이 이렇게 차별 받은 것을 기억할 정도이니, 호남인들의 가슴은 그동안 얼마나 응어리져 있었을까?
사회 각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집단 따돌림을 당한 호남인들의 한(恨)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에게 몰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력을 통한 한풀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호남인을 등용하지 말라는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 이래 조선,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최고 권력을 누려보지 못한 소수인구의 땅에서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사람이 김대중이었다.
눈물로 고대하던 희망이 이루어진 1997년 대선승리!
평화적 정권교체의 의미도 크지만 나는 보았다. 호남사람들의 한이 풀어지던 모습을...
그러한 한이 풀어지면서 호남사람들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영남사람 노무현을 전략적 선택하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한반도 평화'다.
초등학교 때 반공포스터그리기, 반공웅변대회가 많았다. 북한을 이리나 늑대, 손톱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포악한 무리들로 묘사해야했다. 그래야 상을 주니까...
중ㆍ고등학교 때는 여의도 광장에 무수히 불려 나와야 했다.
북한을 타도하는 궐기대회가 걸핏하면 여의도에서 열렸다.
서울의 중고등학생이 다모여 반공을 외쳐야 했다.
북한관련 심각한 뉴스나 휴전선에서 총격전이라도 벌어지면 아수라장이었다.
동네시장에서는 라면과 생필품을 사재기하느라 난리였다.
전쟁이 나면 한 달은 버텨야한다고 박스 채 구입들을 했다.
그러한 공포에서 벗어난 것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다.
깜짝쇼를 즐겨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다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되자 남북문제에 관해서 극보수로 돌아선다.
셋째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낸 것이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군부쿠데타는 유행이었다. 후진국에서 선진 행정체계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계층이 군부엘리트 계층이었으니까...여기에다 무력과 조직력까지 갖고 있었으니 분열된 민주진영을 무력화하기는 쉬었을 것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이 유행했다.
이러한 군부세력에 맞서 싸워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투쟁해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인권과 여성평등에 기여한 공로 또한 크다.
넷째는 '화해와 용서'다.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사람이 살다보면 말다툼이나, 목소리만 높아져도 쉽게 사이가 틀어지는데, 하물며 본인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화해와 용서를 하였다.
72년 5월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으며,
72년 10월 유신으로 일본에 망명해있다 73년 백주대낮 도쿄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납치당하여 바다에 수장될 뻔 했던 위기를 맞고, 장남 김홍일 또한 DJ납치사건의 영향으로 홧병을 얻어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자 모두 의문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는 불행을 겪는다.
80년에는 광주항쟁을 사주했다하여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다.
이러한 엄청난 일들을 그는 다 용서한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허가하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대한 정치보복을 중단시킨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를 보더라도 알겠지만 정권이 바뀌면, 권력기관들은 알아서 前정권에 대한 보복을 시작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중단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없으면 힘들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정권 출범 초기에는 정권을 안정시키는 지름길로 보이고,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어느 누구도 쉽지 않다.
다섯째는 실질적 복지체계의 시작이다.
‘생산적복지’로 일컬어지는 복지전달체계의 시작은 개발과 성장위주로 치닫던 한국사회의 모순을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작으로 절대빈곤층을 구제하고, 흩어져있던 의료보험을 통합하여 건강보험의 기틀을 잡고, 국민연금을 시작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한 의약분업을 실시한다.
의료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은 오바마정권의 핵심 공약이다. 그러나 복잡한 보험체계는 개혁을 어렵게 하고, 지금도 지지부진해서 욕을 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미국처럼 의료민영화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도 치료를 못 받는 나라제도를 따라가겠다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다른 굵직한 업적들이 많아 가려지는 측면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복지 분야의 업적은 상당하다.
여섯째, '평화적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이다.
비록 보수 세력의 원조인 김종필, 박태준과 손잡은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그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지만 진보진영으로의 정권교체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앞서 언급했지만 부산사람인 노무현을 통한 '정권재창출'은 개혁의 지속을 위한 정치9단다운 중요한 결정이었다.
DJ의 여러 업적 중 이상 여섯 가지 정도를 나는 손꼽고 싶다.
‘슨상님’이라는 비아냥거림이나 ‘빨갱이’라는 허접한 비난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과오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호남한풀이에 대비되는 '지역주의'에 전착한 제왕적 권위주의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권위는 ‘막대기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말을 낳으며 권력화 된다.
물론 변화를 위해 이른바 ‘새로운 피’라 불리는 인물들을 제일 많이 수혈하기는 했다. 그 당시 영입된 인물들이 이제는 야당의 거물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몇 번의 야당분열과 창당과정은 호남이라는 기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또한 30년 야당인사들의 누적은 집권이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측근비리, 아들비리의 원인이 된다.
둘째, 분열의 빌미 제공이다.
87년 후보단일화의 실패는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 박정희 정권에서 부산경남은 중요한 야당 거점이었다. 그러한 지역이 지금은 보수의 원조역할을 하고 있다.
79년 부마(부산, 마산을 일컬음)항쟁은 유신독재의 종말을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말이다...
DJ 역시 ‘그때 내가 양보했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지만 너무 늦은 후회일 뿐이다.
그때 당시 후보단일화를 통해 민주진영이 정권을 잡았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상황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있었지만, 당을 몇 번이나 깨고 창당하는 과정은 의회주의자, 정당주의자로서의 면모와 맞지 않는다. 창당전문가라는 비난 역시 피할 길이 없다.
셋째, 비리통제의 실패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옷로비 사건’으로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1년 동안이나 시달렸으면서 비리를 관리하지 못했다.
측근과 아들비리 이후 보수진영에 비해 갖고 있던 도덕적 우월성을 잃어버리면서 정권은 중반 이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측근과 아들들의 비리는 지도층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시대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썩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위의 3가지 과오는 보는 이에 따라서는 엄청난 비난을 쏟아 붓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북평화의 시작인 햇볕정책은 ‘빨갱이’, ‘퍼주기’로 비난받고...
네티즌 댓글 ‘슨상님’, ‘빨갱이’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인터넷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악플은 사라지고 토론은 늘어났으면 한다.
존경의 의미인 선생님을 왜곡할 필요는 없다.
우리사회는 좀 더 많은 선생님을 필요로 한다.
많은 업적을 남기고 떠나신 전직대통령에게 ‘슨상님’ 보다는 ‘선생님’, ‘빨갱이’ 보다는 ‘평화주의자’가 낫지 않겠는가?
조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김대중선생님을 추모하며...